백두대간사람들 12 점봉산 진동리- 사라지는 마지막 오지
작성일 18-08-2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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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강 조회 239,461회 댓글 0건본문
하루종일 내리던 비는 밤새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소도 날려버린다는 진동계곡의 모진 바람이 발길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감추고 싶은 모양이다. 오만한 인간들의 횡포에 속수무책 당해야만 하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몸부림은 진눈깨비와 회색안개를 불러 양수발전소 건설을 위해 파헤쳐진 속살을 가린다. 긴 겨울 가뭄을 끝내는 봄비였건만 점봉산(1419m)에서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는 하늘의 분노였다.
양수발전소는 ‘남는 전기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전력소모가 비교적 적은 밤 시간에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잉여전기를 이용해 하부 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올렸다가 전기의 사용량이 최대로 오르는 낮 시간에 발전을 하는 방식이다. 한번 발전을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원자력발전소의 잉여전기를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 양수발전소인 셈이다. 하지만 100의 전기를 써서 양수발전소가 얻는 전기는 80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가동 중인 청평, 삼랑진, 무주의 양수발전소에 이어 5번째로 건설 중인 양양양수발전소 공사는 이미 50% 이상 진척돼 있었다. “지하수로는 수직굴만 남기고 이미 다 되었고요. 2003년이면 시운전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완공은 2005년이고요.” 발전소가 완공되면 우리는 100만kW의 전기를 더 얻을 수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양수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부댐 예정지의 희귀 식물들도 무사히 이식했고요. 저수지 순환도로는 설치하지 않습니다. 수로의 압력을 조절하는 조합수조도 위치를 바꿨고요.” 백두대간 주능선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백두대간 능선, 해발 900여m 높이에 깊이 95m 넓이 6만여평의 인공호수를 들여앉히고, 자동차 2대가 교행할 수 있는 15km가 넘는 터널이 백두대간을 뼛속까지 헤집어 놓았는데 더이상 보호할 것이 뭐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상부댐 인근의 멀쩡한 산 하나가 물막이 제방 건설용 토사로 사라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양양양수발전소가 파헤쳐 놓은 것은 백두대간만이 아니었다. 진동리 긴 계곡을 따라 이웃간의 반목이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발전소 주변지역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급되는 지역지원사업비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복권에 맞은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했어요. 마을공동사업지원비라고 돈이 나온 거예요. 처음에는 생수공장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돈이 부족했고. 이러저러한 사업을 생각하다가 늘기 시작한 관광객들을 위해 민박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군에서 알려준 대로 주민회를 만들고 정관이라는 것도 만들어 심의위원회라는 곳에서 심의까지 마쳤다. 양수댐 공사가 시작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95년 5월 이전에 진동리에 거주하던 23가구가 사업을 시작했다. 벌겋게 녹이 쓴 양철지붕집 옆에 외국영화에서나 봄직한 통나무집들이 세워졌다. 통나무집들이 늘어나면서 사업에서 제외된 95년 5월 이후에 진동리에 들어온 주민들의 문제제기는 커져만 갔다. 결국 고소 고발로 이어졌고 지난해 여름에는 마을 사람 상당수가 검찰을 드나드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검찰 조사는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발전소가 완공되는 2005년까지 매년 양수댐을 중심으로 반경 5km 이내 지역에 지역지원사업비가 지원된다. 민박으로 얻어질 수입의 분배문제도 말썽을 키워 나가게 될 것이다.
“지난 2월27일 설피밭 눈밟기 행사를 치렀어요. 눈이 없어 행사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매년 하던 행사인 데다 마을의 갈등을 푸는 계기를 만들어보자고 억지를 부렸어요.” 그러나 신주민들은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마을 대동의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행사는 점점 깊어지는 반목을 확인하는 기회였을 뿐이다. 사업지원비를 준 한국전력은 지원비 집행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뒷짐이고, 군청은 주민 자치를 앞세우고 있지만 넓어만 가는 ‘반목의 강’은 주민들이 다리를 놓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3명, 올 들어 10명으로 늘어난 진동분교장의 학생 수 증가는 앞으로도 얼마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진동분교장의 본교였던 방동초등학교와 인근의 추대분교장이 학생 수 감소로 오는 9월1일 폐교되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교통이 좋아지면서 진동리에 땅을 두고도 외지에서 오가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정착이 늘고 개발이익을 노리고 진동리에 정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댐이 앗아간 것이 너무 많다고 걱정이다. “아이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가르치는데 마을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면 걱정이죠.” 선생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모처럼 만난 눈밭에서 마음껏 뒹굴고 있었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12-점봉산-진동리-사라지는-마지막-오지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양수발전소는 ‘남는 전기를 사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전력소모가 비교적 적은 밤 시간에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잉여전기를 이용해 하부 댐의 물을 상부댐으로 올렸다가 전기의 사용량이 최대로 오르는 낮 시간에 발전을 하는 방식이다. 한번 발전을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는 원자력발전소의 잉여전기를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 양수발전소인 셈이다. 하지만 100의 전기를 써서 양수발전소가 얻는 전기는 80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가동 중인 청평, 삼랑진, 무주의 양수발전소에 이어 5번째로 건설 중인 양양양수발전소 공사는 이미 50% 이상 진척돼 있었다. “지하수로는 수직굴만 남기고 이미 다 되었고요. 2003년이면 시운전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완공은 2005년이고요.” 발전소가 완공되면 우리는 100만kW의 전기를 더 얻을 수 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양수발전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상부댐 예정지의 희귀 식물들도 무사히 이식했고요. 저수지 순환도로는 설치하지 않습니다. 수로의 압력을 조절하는 조합수조도 위치를 바꿨고요.” 백두대간 주능선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백두대간 능선, 해발 900여m 높이에 깊이 95m 넓이 6만여평의 인공호수를 들여앉히고, 자동차 2대가 교행할 수 있는 15km가 넘는 터널이 백두대간을 뼛속까지 헤집어 놓았는데 더이상 보호할 것이 뭐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상부댐 인근의 멀쩡한 산 하나가 물막이 제방 건설용 토사로 사라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양양양수발전소가 파헤쳐 놓은 것은 백두대간만이 아니었다. 진동리 긴 계곡을 따라 이웃간의 반목이 안개처럼 퍼지고 있었다. 발전소 주변지역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급되는 지역지원사업비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복권에 맞은 기분이 이런 것이구나 했어요. 마을공동사업지원비라고 돈이 나온 거예요. 처음에는 생수공장도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돈이 부족했고. 이러저러한 사업을 생각하다가 늘기 시작한 관광객들을 위해 민박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어요.” 군에서 알려준 대로 주민회를 만들고 정관이라는 것도 만들어 심의위원회라는 곳에서 심의까지 마쳤다. 양수댐 공사가 시작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95년 5월 이전에 진동리에 거주하던 23가구가 사업을 시작했다. 벌겋게 녹이 쓴 양철지붕집 옆에 외국영화에서나 봄직한 통나무집들이 세워졌다. 통나무집들이 늘어나면서 사업에서 제외된 95년 5월 이후에 진동리에 들어온 주민들의 문제제기는 커져만 갔다. 결국 고소 고발로 이어졌고 지난해 여름에는 마을 사람 상당수가 검찰을 드나드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검찰 조사는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발전소가 완공되는 2005년까지 매년 양수댐을 중심으로 반경 5km 이내 지역에 지역지원사업비가 지원된다. 민박으로 얻어질 수입의 분배문제도 말썽을 키워 나가게 될 것이다.
“지난 2월27일 설피밭 눈밟기 행사를 치렀어요. 눈이 없어 행사를 하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매년 하던 행사인 데다 마을의 갈등을 푸는 계기를 만들어보자고 억지를 부렸어요.” 그러나 신주민들은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마을 대동의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행사는 점점 깊어지는 반목을 확인하는 기회였을 뿐이다. 사업지원비를 준 한국전력은 지원비 집행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뒷짐이고, 군청은 주민 자치를 앞세우고 있지만 넓어만 가는 ‘반목의 강’은 주민들이 다리를 놓기 어려울 것처럼 보였다.
지난해 3명, 올 들어 10명으로 늘어난 진동분교장의 학생 수 증가는 앞으로도 얼마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진동분교장의 본교였던 방동초등학교와 인근의 추대분교장이 학생 수 감소로 오는 9월1일 폐교되는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교통이 좋아지면서 진동리에 땅을 두고도 외지에서 오가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정착이 늘고 개발이익을 노리고 진동리에 정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들은 댐이 앗아간 것이 너무 많다고 걱정이다. “아이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가르치는데 마을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면 걱정이죠.” 선생님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모처럼 만난 눈밭에서 마음껏 뒹굴고 있었다
출처: http://100mt.tistory.com/entry/백두대간사람들-12-점봉산-진동리-사라지는-마지막-오지 [<한겨레21> 신 백두대간 기행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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